12월 2, 2020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의 철학과 예술의 정의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의 철학과 예술의 정의

차용미술의 가치평가의 가능성과 비평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오늘날 미술의 가치평가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오늘날을 다원주의 시대로 규정짓고 그 입장에서 비평의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아서 단토의 논의를 진행시킬 것이다.

그는 예술 정의에 대한 논의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특징을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미술은 의미가 구현된 대상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오늘날 미술이 다원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단토는 차용미술과 원 이미지의 차이를 분석하여 예술을 정의한다.

1964년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는 당시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흔히 사용되던 브릴로 상자와

동일하게 생겨서 일상 사물인 브릴로 상자와 눈으로 구별할 수 없었다.

단토는 워홀이 만든 「브릴로 상자」는 예술작품인데, 그와 지각적으로 식별 불가능한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는 왜 예술작품이 아닌지를 질문한다.

그러면서 단토는 더 이상 예술의 실례를 들어 예술의 의미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고,

어떠한 형태를 하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토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가 눈으로 식별 불가능하지만,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의 이미지를 차용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가 줄 수 없는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예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 예술의 본질을 도식화하려는 노력을 수행하여 ①과 ②의 조건이 바로 어떤 것이 예술의 지위를 갖게 되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사실 그 이상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은 ① 무엇에 관한 것(about something)이어야 하고, ② 그것의 의미를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Danto, 1997: 195).”

이 정의에서 단토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작품은 그것과 지각적으로 식별 불가능한 일상 사물과 달리

①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② 그것을 물리 대상에 구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1960년대 이후 팝아트나 미니멀리즘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일상 사물과 예술작품이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단토는 형태의 측면에서는 예술과 일상 사물은 구분이 안 되지만 일상 사물과 달리 예술작품은

무엇을 지시하면서 그 자체로 그것을 보여준다는 뜻에서,

예술작품은 ① 의미를 지니고 있고, 동시에 ② 그 의미를 특정한 형식으로 물리 대상에 구현하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팝 아트 등장 이후부터는 한 대상이 예술작품인지의 여부는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워홀의 「브릴로상자」와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는 눈으로 구분할 수 없지만

전자는 예술작품으로서 후자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릴로 상자’의 디자인을 차용하여

동일한 형태의 상자를 만들어서 미국의 풍요로우면서도 표준화된 소비 사회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의 이미지가 브릴로 세제에 관한 디자인이었다면,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풍요로운 미국 소비사회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고,

그 형태의 적절성은 작가가 의도한 목표에 적합한지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상 사물과 지각적으로 식별 불가능한 예술작품이 등장했다는 것은 단토로 하여금

‘의미가 구현된 대상’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술이 어떤 가치도 주장할 수 있는 시기에 도래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주장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단토의 주장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이후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기술이 아니라

예술(Fine Art)이 되려면 예술가는 예술작품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아서 자신의 작품 속에

제시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팝아트의 등장으로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이 지각적으로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예술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져야한다는’

구속없이도 자유롭게 어떠한 목표든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예술종말론의 핵심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시각예술작품이 무엇처럼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선험적 구속은 더 이상 없으므로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술사의 종말에 살고 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의 일부이다(Danto, 1997: 198).”

단토의 ‘예술의 종말’이 의미하는 바는 예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패러다임이 바꿨다는 주장이다.

팝아트의 등장으로 인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은 지각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깨졌다.

이제 예술가들은 예술이 무엇인지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구속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무엇이든지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단토는 이 시대를 다원주의시대라고 명명하고 있다.

“나는 탈역사적 미술을 내가 ‘객관적 다원주의’라는 말로 칭하려는 그런 조건들 하에서 창조되는 미술로 생각한다. 이 객관적 다원주의라는 말로 내가 뜻하는 바는 적어도 미술사에 관한 한, 미술이 나아가야 할 역사적으로 지정된 어떤 방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Danto, 1994: 328).”

1960년대 팝아트의 등장, 다시 말하면 일상 사물과 지각적으로 구분 불가능한 예술작품의

등장하게 됨으로써 단토는 예술에 관한 두 가지 주장을 제시하게 되었다.

첫째, 예술은 일상 대상과 형태상 구분이 안 될 수 있지만, 그 대상이 예술이라면

‘의미가 구현된 대상’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술의 종말’, 즉 예술가는 일상 사물과 지각적으로 구분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예술(Fine Art) 패러다임의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예술은 의미를 구현하고 있고, 오늘날은 어떤 목표도 추구할 수 있는 다원주의시대라는

단토의 주장을 근거로 그의 비평이론을 추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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